Based in Seoul

 

99betaHUD, dpgp78, Jipyeong Kim, Hyunjin Kim, Hwan Lee
Jun 30 — Jul 28, 2023

Curated by Sein Kim
Installed by Shampoo (Assisted by Jinju Kang, Yoonmook Choi)
Graphic Design by Moonsick Gang
Photography by Cheolki Hong
Hosted by AlterSide
Sponsored by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Arts Council Korea

Don’t dream it.
Be it.
- 록키 호러 픽쳐 쇼

그림으로써 숨으려 했던 존재들이 있다. 이를테면 예찬(倪瓚, 1301~1374)의 그림들은 은일(隱逸)에의 동경으로 평면 위에 나타낸 이상향적 공간에 관념적으로 숨기 위한, 문인의 성공적 자아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일설에 따르면¹, 그것들 중 상당수가 타인의 요구에 응하고자 자신을 불어넣지 않고 대강 그려낸 ‘응수화(應酬畵)’로 파악될 여지가 많으며, 심지어 〈용슬재도 容膝齋圖〉(1372)처럼 잘 알려진 걸작마저도 거기에 속할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예찬의 그림들 특유의 압도적 적막감은 오히려 그렇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그림 속에서의 은일이 아닌, 그림의 배면으로 자신을 떠나보내는 적극적 부정으로서의 그리기. 문인 탄압이나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현실에서 그가 전진교(全眞敎)²의 자장 하에 추구했던 태도인 ‘냉담(冷淡)’이 실존적 일상에서 어떻게 관철되었을지를 상상해보면, 은일이란 하나의 이미지보다는 리얼한 부재의 형식으로 실제 삶에 편재해야 하는 가치처럼 다가온다. 예찬의 그림은 그런 부재 자체의 파사드로써 ‘다른 세계’를 앞세워 그 전체로부터 스스로를 가리기 위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1980년대 포스트펑크의 하나로 발생한 초기 고스 록의 다른 이름은 ‘포지티브 펑크(positive punk)’였다. 현실에 대한 펑크의 부정성이 힘을 잃어갈 때, 고스들은 스스로 그 부정성 자체가 되어 검은 옷과 짙은 메이크업 뒤로 숨어 미래의 상실을 내향적 낭만주의의 계기로 되돌려나갔다. 이후 고스는 하나의 미학적 관행으로 지금까지의 (반)문화 전반에 용해되어, 불안정한 현실에 연동한 심미적 세계관의 기표로 호출되곤 한다.

여기서의 고스는 그 기원 측면에서 불화와 이간질의 여신 에리스(Eris)를 신봉하는 디스코디어니즘(Discordianism)을 전유하며 출발했다. 이 유사 종교가 설파하듯 세계란 인간적 합리성과 상충하는 혼돈의 장일 뿐이라면, 거기서 ‘부재’와 ‘가려짐’은 하나일 것이다. 상실을 겪은 누군가에게 부재와 가려짐의 분별이란 고통스럽고, 그 분별의 근본적 불가능성만이 유일한 가능성이자 매혹이 되기도 한다. 고스 노이즈 록 밴드 시즈카(静香)를 이끌었던 미우라 시즈카(三浦静香, ?~2010)는, 2008년 쓰촨성 대지진의 희생자들을 ‘다른 세계’로 떠난 이들이라 지칭해가며 애도하는 장문의 메모를 남겼다. 그로부터 두 해가 지나 자살한 시즈카의 죽음도 '다른 세계'에 숨기 위한 선택이었다면, 언젠가 그녀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팬데믹을 거치며 우리가 삶의 어떤 층위에서든 집단적으로 체화할 수밖에 없었던 감각은 바로 그런 부재와 가려짐 사이의 애매함과도 밀접한 것들이다. 《New Hermits》는 ‘은자(隱者, hermit)’와 ‘고스’라는 두 프레임을 포개어 일련의 평면 작업을 은일의 파사드이자 부재/가려짐의 양화(positive)로 비추며, 단절이나 거리로만 가능했던 헤아림과 꿈을 위한 빈자리들을 우리가 다시 익숙해져버린 ‘대면’의 형식을 역이용해 제안한다. 그 빈자리들처럼,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새로운 은자들’이었다.

(김세인)

¹ 장진성, “예찬: 신화와 진실,” 미술사와 시각문화 no.17 (2016), doi:10.22835.
² 도가의 한 분파인 사상 체계로, 왕중양(王重陽, 1112~1169)이 주창했으며, 선불교의 영향으로 현실 차원의 탈속적 수양론을 강조했다.

이환
검은 벽을 저조도로 밝히는 영상은 아이패드에 방치되어 있던 미완성 애니메이션이고, 밖을 내다보는 듯한 검은 옷의 천사는 이제 막 제작을 시작한 삼면화의 첫 파트다. 모종의 부정적 감응을 직설적으로 표출하는 소형 드로잉들은 애니메이션과 삼면화 사이에 놓인 시간의 산물로, 이환은 이 그림들을 증류되어 객체화된 자기 자신으로 대하며 못을 박아 직접 죽이고 애도하는 장례식을 치렀다. 그는 이제 비로소 ‘다른 세계’에 안착했다.

김현진
누군가와의 만남이 꿈에서만 가능하다면, 그 만남의 대상으로서 현실의 존재와 현실에 부재하는 존재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해진다. 김현진은 각종 도상이나 장식적 요소를 취사 선택해 단절과 조우가 뒤얽힌 창으로서의 화면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실제 조우와의 등가물이 된 몽상과 가공의 기억의 산물이며, 그려진 존재가 실체로서의 공백 안에서 오히려 스스로 살아가리라는 믿음의 발로이기도 하다.

김지평
족자나 병풍의 구성 요소를 ‘치마’, ‘저고리’ 등 여성 복식에 비유해 부르는 관습에서 착안, 김지평은 고스 전통의 비가시적 여성상을 장황의 구조에 재배치한다. 족자 두 점은 고딕 소설의 등장인물인 ‘레베카(Rebecca)’와 ‘버사(Bertha)’를, 세 폭 병풍은 고스 록 밴드 수지 앤 더 밴시스(Siouxie and the Banshees)의 ‘수지 수(Siouxie Sioux)’를 위시한 고스 록 여성 보컬리스트들을 참조해 만들어졌다. 이 고스들은 장황의 평면성이 표면의 정보값인 ‘의복’과 동화되며 불식된 어떤 영역에 숨은 채, 스스로를 외피와 실체 사이에서 진동시킨다.

dpgp78(김지환, 민성식)
공간을 흰색으로 차폐하며 고스의 메이크업처럼 작동하는 dpgp78의 커튼은 바깥 풍경을 일종의 행렬도로 바꿔치기하는데, 그와 같은 행사 그림에서 소거되는 주인공의 부재/가려짐 대신, 여기서는 그리는 쪽의 부재/가려짐이 반영된 효과가 나타난다. 완성된 이 커튼부터가 전시를 위해 납품한 하나의 ‘응수화’겠지만, 김지환과 민성식이 의식적인 소통 없이 각각의 드로잉을 교대로 주고받으며 즉흥성과 장식적 고려로 이루어지는 작업 과정 또한 서로의 침묵에 대해 작은 ‘응수’들로 진행되는 놀이라 할 수 있다.

99betaHUD(기예림, 한지형)
현실 배면에 숨은 다중적 시스템을, 99betaHUD는 시스템 언어를 빌린 재연(iteration)의 암시적 형태로 흘려보낸다. 누군가의 빈 말풍선에 투사되는 영상은 기예림과 한지형이 도시의 시각성에서 다중 이미지를 발굴하고 그것에 기반해 작성한 스코어의 산출물로, 가장 확실한 형상으로서의 주체가 인공지능과 이미지 언어 등으로 변형/전복되는 현장을 연출했던 〈Fountantine〉(2022)의 연속선상에 있는 신작이다.

  

Minhee Kim
Jun 4 — Jul 2, 2021

Curated by Sein Kim
Music by Yeong Die
Graphic Design by Kai Oh
Text by Sein Kim, Alter Kim
Furniture by Junyoung Park
Installation by Dooyong Ro
Photo by Euiseok Sung
Sponsored by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라이너 노트
김세인

‘이미지 앨범’이란 어떤 서사의 무대가 되는 세계를 표현한 음반이다. 사운드트랙이 대개 영상에 실제 삽입된 트랙들로 이루어져 서사에 견인되는 구성을 취하지만, 이미지 앨범은 상상적 공간의 음악화로서 세계-구축하기(world-building)에 가담한다. 아니메와 망가의 전성기였던 일본의 1980년대에선 이미지 앨범이 그려내는 ‘세계’ 또한 양산될 수 있었다.

그때의 아니메나 망가 관련 음반을 이제와 유튜브로 듣는 밀레니얼에게, 어떤 의미에서 그건 모두 사운드트랙인 동시에 이미지 앨범이다. 메타데이터를 따라 과거로 동결된 특정 시점의 산물로서 ‘이쪽’ 세계에 흐른 시간의 사운드트랙이 되거나, 아니면 원작의 서사를 건너뛰고 접한 음반이라는 차원에서 이미지 앨범이 되어 ‘저쪽’ 세계의 존재를 환기하거나. 김민희는 전자가 유도하는 나른한 노스탤지어의 감각을 뚫고, 후자에 관련된 원본성과의 접면에 가 닿는다.

김민희는 그런 음반의 패키지를 장식한 여성 캐릭터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된 음악을 상상한다. 하나하나가 싱글이자 풀 렝스일 그 트랙들을 우린 들을 수 없다. 그 가상의 ‘원곡’들은 각자의 캔버스가 표징하는 우리 감각계 뒤편으로 물러나 있다. 지금 당신에게 들리는 최영의 음악은 1980년대 『디지털 트립 시리즈』¹의 포지션을 재연하면서, 들리지 않는 이미지 앨범을 어레인지한 것이란 위상에서, 공간적 사운드트랙으로서의 이미지 앨범이란 위상에서 재생되는 중이다. 그러면서 이쪽 세계의 현재와 저쪽 세계의 미래가, 캔버스 표면 ‘앨범 아트’ 속 캐릭터의 눈에 동기화되어 맺힌다.

상정된 가상의 원곡을 위한 앨범 아트에, 김민희는 이쪽 세계의 또 다른 1980년대로부터 파급된 사이키델리아의 앨범 아트 어법을 전유한 몽경(dreamscape)의 필터를 적용한다. 배음(overtones)의 증폭, 그리고 반복 구조에 기반해 가사-서사의 특권을 노이즈로 산화시키고 사운드 박스를 하나의 순간성의 공간으로 구획했던 그 음악이, 김민희의 앨범 아트 뒤편에 가려진 내용물과 닮았기 때문이다. 김민희는 이 여성 캐릭터들의 재현적 배음이 증폭된 음악을 상상한다. 그 배음이란 당시 그들이 서사 ‘바깥’에서 훨씬 구체적으로 체현하고 있었을 미래고, 그런 미래를 놓고 이쪽 세계의 다른 무수한 ASUKA나 EVE들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미세하게 파열시켜나가는 현실의 재귀적 반영이기도 하다. 앨범 아트로 크롭된 이미지에 가하는 김민희의 필터링은 아니메와 망가의 서사, 또 선예적 질서에 대한 의식을 배제한 촉각적인 과정이다. 그 사랑의 과정은 순간으로 응집된 몇 시간에 걸쳐 사물의 세부를 낱낱이 촉지하는 투약자의 환각을 닮았지만, 그 감각은 자기 충족적 환상이 아니며, 재활성화된 과거로서의 이미지, 또 캔버스와 우리에게 각인된 이름-제목이라는 현재적 틈이 앞으로 무엇일 수 있는지, 또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헤아리려 고의로 빠져든 환각에 가깝다. 어떤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 하나의 진동처럼 흐른다.

¹ 1980년대 일본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전자음악이 된 아니메 음악’을 컨셉으로 전개했던 음반 시리즈. 신시사이저가 보급되고 테크노가요(テクノ歌謡)가 주목받던 당시 상황에 힘입어 50여 장의 음반이 발매됐다.

  


Bomi Kim, Sion Kim, Doyub Lee, Yujin Chung
Apr 10 — May 7, 2025

Curated by Sein Kim
Graphic Design by Gunjung Lee
Hosted by The Reference
Supported by Arts Council Korea

안녕하세요,

어떤 말을 꺼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오히려 말은 쉽게 막히기 마련이지요. 아무리 진심을 다해 이야기하려 해도, 무언가를 온전히 드러내는 일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고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차라리 그 고백을 망설이는 순간에만 발화 가능한 것들에 주의를 기울여보는 일도 의미 있지 않을까요.

⟪세네카⟫는 그런 마음에서 시작된 전시입니다. ‘세네카’는 일본어 ‘세나카(背中, せなか)’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책등’을 일컫는 속어로 쓰입니다. 서가에 꽂힌 책이 우리를 향해 등을 돌린 채 서 있을 때, 책등은 이야기를 감추는 동시에 지시합니다. 책등은 이야기의 물리적 기둥이 되지만, 세상의 모든 책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죠. 어떤 이야기들은 끝내 읽히지 못한 채 닫혀 있고, 책의 무게는 침묵의 무게로 남습니다.

이번 전시에 함께한 네 사람의 작업은 어떤 이야기를 재현하거나 구성하기보다는, 마치 책등처럼 조용히 이야기를 감춘 채 그 기척만을 드러냅니다. 어떤 진심은 감춰져 있기에 오히려 더 ‘진짜’일 수 있으니까요. 전시장에 놓인 흔적과 암시는 말해지지 못한 이야기의 윤곽을 그립니다. 우리는 그 흐릿한 경계를 따라 걸으며, 이해하려 할수록 멀어지는 감각에 닿게 됩니다. 이곳의 실패한 고백들, 혹은 ‘말해지지 못한 것이 있다’는 표명 뒤편에는 무엇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작업들은 등을 돌린 채 조용히 선 책처럼, 끝내 말을 아낍니다. 다만 전시는, 그 앞에서 당신이 잠시 멈춰 서기를 바랍니다. 읽을 수는 없지만 어딘가 존재하는 이야기들, 저자와 독자 모두로부터 얼마간은 독립된 그 이야기들이, 당신 안에서도 조용히 열리기를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텍스트, 사라진 문장, 잊힌 흔적들을 가늠해보는 여정의 감각이 당신 곁에 오래 머물기를 바랍니다.

만일 이 모든 것이 책등으로만 이루어진 책일 뿐이라면, 적어도 한 순간쯤은 우리가 같은 표정으로 그 침묵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심 어린 망설임을 담아,
김세인

김보미
표면과 이면, 흐름과 정지 사이에서의 긴장이 맴돕니다. 텍스타일을 활용한 촉각적인 결은 시간의 흐름을 머금으며 과거의 흔적을 은밀히 상기시키고, 난간대를 모티프로 한 그림은 시선을 붙잡아두면서도 그 너머의 숨겨진 공간으로 조용히 이끕니다. 기능을 멈춘 채 자리를 잡은 환풍구 역시, 멈춤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흐름의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김보미가 펼쳐낸 직조된 표면과 침묵하는 구조는 각각의 방식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의 윤곽을 나지막이 드러냅니다.

김시온
읽히지도 들리지도 않는 이야기를 드로잉과 향으로 환기합니다. 드로잉은 이야기의 삽화라기보다는 번역에 저항하는 언어의 흔적처럼 보입니다. 완결을 거부하며 감각의 틈에서 흔들리는 선들은 찢긴 종이 위에 겹쳐져 물질적 변형을 암시하는데, 이는 변화하며 생성하는 환경을 구성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공간을 채우는 향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무언가의 존재성을 증폭시키고, 관객의 몸과 인식으로 스며들어 내밀한 정동을 매개함으로써 감각의 범위를 시각 너머로 확장시킵니다. 김시온은 전달되지 못한 이야기가 남긴 잔재로 감각적 지도를 그려내고, 관객은 그 지형의 전개에 따라 걷습니다.

이도엽
해명되지 못할 이야기가 질서와 혼돈 사이에서 피어오릅니다. 그는 자의적인 관찰 시스템을 설정해 이질적인 사물과 언어, 행위를 분류하고 다시 흐트러뜨리며 그 경계를 미묘하게 넘나듭니다. 오브제의 공간 분할은 경계를 세우려는 본능을 반영하지만, 그림자로써 드러냄과 감춤 사이를 오가는 구조는 시스템의 불완전성을 보여줍니다. 한편 그 과정의 시적인 등가물이라 할 그림들이, 혼돈이 가라앉아 응축된 듯 미묘한 생명력으로 진동합니다. 이도엽은 관객을 누군가의 사적인 이야기에 대한 고현학(考現學)적 탐사로 초대하며, 시스템 너머의 인간적인 층위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정유진
가상의 영화를 구상한 뒤 그것이 남긴 흔적과 파편을 시각 언어로 옮깁니다. 영상과 설치는 이야기로 응결되지 못하고 사건과 감정 사이에서 부유하는 영화적 상흔을 드러냅니다. 텅 빈 극장을 비추는 영상, 연주자 없이 홀로 반복되는 연주, 부재의 표식으로만 남는 조명,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일종의 포스터에 해당하는 평면 작업을 통해, 관객은 무언가를 본다기보다 어떤 감정의 궤적에 스치듯 닿게 될 뿐입니다. 정유진은 구체적인 재현 대신 손에 잡히지 않는 분위기와 잔상의 형태로 기억을 속삭이며, 공동(空洞)에서 기원 없이 부유하는 유령들이 남긴 온도와 방향을 가만히 제시합니다.

 

Yesul Kim, Rémi Lambert
Jan 19 — Feb 18, 2024

Curated by Sein Kim
Music by Neptunian Maximalism
Hosted and Organized by N/A

진정한 공룡의 예술
김세인

진정한 공룡의 예술이란 무엇인가? 공룡은 화석에 의지한 우리의 후방 투사가 빚어낸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며, 그 이미지는 자신이 지시하는, 인류 이전에 사라져버린 그들의 추정된 몸집 만큼이나 커다란 상상에 의지해 지속되어왔다. ‘공룡’의 ‘공(恐)’이 '두렵다'를 뜻하는 동시에 ‘아마도’나 ‘추측하자면’을 뜻하기도 하듯, 공룡의 이미지는 사실성의 불가피한 불모를 떠안은 채 그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한계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더라도 극복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룡이 존재할 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공룡의 예술이란 공룡의 존재가 아니라 공룡의 부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어야 한다. 블랙 메탈에서 파생된 음악적 흐름인 다이노신스(Dinosynth)를 다루는 서브레딧의 소개말은 ‘진정한 공룡의 소리(The true sound of the dinosaur)’다. 물론 공룡의 소리가 실제로 어땠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말해두고 싶은 것은, 블랙 메탈의 이단적 숭배 대상을 '공룡'으로 거의 천진하게 대치해놓은 그 '진정한 공룡의 소리'가, 어떤 과거와의 단절과 낙차로만 가능한 미적 섬김이라는 점이다.

나아가 궁극적으로, 진정한 공룡의 예술이란 언젠가 감상자 자신도 미래의 누군가에게 공룡과 같은 절대적 부재, 상실조차 성립할 수 없었던 그런 부재로 남으리라는 예감의 동기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미래란 저 앞에만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운석처럼 불시에 떨어져 우리의 현재를 완전히 덮어씌우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며, 미래란 필연적으로 현재를 온전히 기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공룡의 예술은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꺼번에 파지할 수 있는 예술이다.

일례로 여기에 김예슬과 헤미 랑베흐의 《Dinosavr》가 있다. 이 전시는 공룡의 시절과 우리의 유년 시절이 공시적으로 중첩된 세계관을 연극적으로 제시하는데, 일종의 상상적 기록화 또는 의사적 유물이라는 포맷의 차원에서 파악하자면 그들의 존재는 어디까지나 과거에 머문다. 더 면밀히 보자면 이 전시에서 공룡과 아이들은 단순히 한 세계에 공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유비가 됨으로써 순환적으로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은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부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재는 어린 시절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직관적인 믿음 속에서 과거의 많은 아이들이 ‘예전의 나’라는 말로 대상화되곤 하지만, 아이가 어른으로서의 미래를 완전히 인식할 수 없는 것 이상으로 어른도 아이로서의 과거를 완전히 인식할 수 없다. 예전의 나 자체, 그리고 예전의 내가 좋아했거나 싫어했고 같이 놀았거나 싸웠고 동경하거나 두려워하며 상상했던 것들이 존재할 때,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진정한 공룡의 예술이란, 상실보다 부재가 앞선 그런 모든 것들을 암시하는 화석의 예술이어야 한다.

 

Naeun Oh, Ezi Woo
Sep 26 — Oct 12, 2023

Curated by Sein Kim
Graphic Design by PACAYPACAY
Photo by Eunchae Kwon
Hosted by AlterSide
Supported by Arts Council Korea

손님에게
김세인

오셨군요. 이곳의 이름은 우이지(powder)와 오나은(oliochambre)이 ‘그 일’을 위해 쓰는 명의를 조합해 지어졌습니다. 그러면서 ‘가루’는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특유의 가벼운 시각성과 매체 차원의 유동성을 환기하며, ‘방’은 확장된 의미에서의 그 일로서의 영역, 또는 그 일과 그 일이 아닌 것을 하나의 연속체처럼 설정할 때의 자기 충족적인 문맥을 지시합니다.

프랑스 디종에서 미술을 배웠고 서울에서 일하는 오나은의 파스텔화는 도안이었던 이미지들이 변주되어 한 화면에 배열된 듯 보입니다. 그녀의 도안은 비누나 화병, 지갑 케이스와 같은 사물들의 형태미나 미묘한 향취 등이 선형적으로 반추상화된 것으로, 의미의 공백을 인정한 채 조형된 감각적 편린들이자, 새기는 쪽과 새겨지는 쪽 각자의 지극히 내밀한 문장 속에서만 의미로 활성화될 수 있는 단어들에 가깝습니다. 오나은은 파스텔화를 통해 그 도안들에 대한 종합(synthesis)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은 비자발적 기억이 정제된, 외부를 향해 닫힌 사적이고 시적인 의미의 복원을 위한 그림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미술을 배웠고 일본 도쿄에서 일하는 우이지의 니팅과 레진 오브제는, 도안으로 매개된 간행적(intra-active) 과정 자체가 자기 지시적으로 연장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연약하고 덧없이 언제든 날아가버릴 듯한 도안은, 주근깨나 주름, 튼살 등 ‘불완전함’으로 간주되는 신체적 변수에 대응한 즉흥성으로써 마치 피부에서 돋아난 것처럼 변주되고, 우이지는 그 결과물을 다시 일종의 도안처럼, 니팅과 레진 작업을 위한 매개로 활용합니다. 몸에서 시작된 즉흥성의 연쇄를 이어가면서, 끝나지 않는 하나의 순간처럼 ‘만남’과 ‘접촉’의 순간을 지속시키는 것이죠.

옆방에서 들려오는 것과 같은 음악을 틀어둔 채 누군가의 살갗을 찔러 이런저런 이미지를 새겨내는 일로 살아가는 두 사람을 떠올려보세요. 미리 약속된 시각에, 정해진 시간 동안, 직업적 능률성에 촉각을 기울여 타인의 몸을 꾸미고 보수를 받는 것. 두 사람에게 그 일은, 애증의 대상인 이 세계의 현실적 질서에 미술 전공자가 순응하고 스스로를 내맡기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지만, 거기서의 일상에서 의미의 두께 없이 응결되었던 아름다움의 순간을 타인의 몸에 그대로 물질화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머잖아 사라질 이 방처럼, 몸도 결국 하나의 순간이고, 이들의 도안은 단 한 번씩만 사용되니까요.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은 그런 두 사람 각자의 방에서 돋아났습니다.

 

Younghae Chang
Mar 2 — 28, 2024

Curated by Sein Kim
Installation by Shampoo
Graphic Design by y!
Sponsored by Arts Council Korea

몸은 ‘나’를 위한 단상이자 침대, 그리고 관
김세인

치과에서 사랑니를 뽑는다. 통각만이 차단된 상태로 입 안 발치 도구에 집힌 생니가 완강해, 함께 당겨지는 두개골의 질량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신경정신과에서 정신 위생을 위한 약을 처방 받는다. 복용을 기점으로 갈리는 두 ‘나’는 서로를 근본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면서 교대로 죽었다가 살아나기를 거듭한다. 치명적인 감염성 질환으로 집에 갇힌다. 사적인 공간이 공적인 의료망에 예속된 격리소와 중첩되고, 모두는 ‘나’의 침대가 병원의 침대와 구분되지 않는, 때로는 관과도 구분되지 않는 몇 년을 보내야만 한다.

장영해는 ‘나’라는 믿음과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는’ 지각 사이에서 우리를 진동시키는 접촉에 관한 작업들을 전개해왔다. 지난 개인전이 섹슈얼리티의 관습이나 규칙에 따른 강박적 리듬과 그로 인한 감정적 운동성에 주목했다면, 이번 두 번째 개인전은 그런 운동성의 차원이 언제나 수반하는 모종의 매개를 전경화한다. 그 매개와 그로써 수행되는 사물화/대상화의 메타포로 동원되는 것은 격리체를 통제할 수 있도록 장갑을 내장한 컨테이너인 ‘글러브 박스(glove box)’의 시각성과 그것이 함축하는 의학적 통제의 손길이다.

글러브 박스로 도해될 수 있는 편집증적 관측 구조, 그리고 통제자와 통제 대상의 불가피한 위계 하에서, 증상은 인위적으로 억제되고 필요하다면 환부가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며 경우에 따라서는 몸의 연명 자체가 중단되기도 한다. 그것은 의학적 통제가 삶이라는 명목으로 몸의 여러 층위에 편재시키는 크고 작은 죽음들이다. 그 죽음들은 우리가 자신의 몸을 즉물적으로 ‘나’와 동일시할 수 없다는 새삼스러운 진실의 가장 일상화된 예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영해는 그렇게 속절없이 외부를 향해 열린 몸에 대한 기탈(excription)로써 비로소 주체가 가능해진다는 식의 지나치게 산뜻한 아이러니는 일단 뒤로 물린 채, 대신 ‘나’의 일부인 몸이 ‘임상’이라는 직능적 차원에 물질적 대상으로 포섭되었을 때의 감각을 담담히 형상화함으로써 거기서 불거지는 모든 의미의 죽음들을 기리고자 한다.

통제의 이물적 감각이 ‘나’를 깎아내고 들어내며 발생한 찌꺼기가 압착되거나 재단된 듯한 부동의 덩어리들이 있다. 거기에 가해지는 객관성의 하중과 날카로움이, CPR 카운트의 장황한 헐떡임으로, 그리고 관객과 등장인물을 동시에 소격시키듯 스크린을 가로지르는 X선 투과 이미지의 냉담함으로 계속 더해지는 것만 같다. 여기서 관객과 전시 사이에 성립하는 항등식은 관객의 몸 안에 유폐된 죽음들을 향해서도 열려 있는데, 이곳에 기립해 있고 상영되고 있는 것은 마치 단상처럼 ‘나’를 떠받치고 있으면서도 ‘나’와 격절되는 몸체(corpus)들이며, 그 몸체들이란 의학적 통제 하의 우리 몸뚱이이자 그로써 매개되는 경험 속에서 튀겨지거나 쪼그라들었던 순간적 감각의 시체들이기도 하다. 병원만큼이나 표백된 공간인 화이트큐브에서, 관객들이 그 시체들의 사인을 각자의 방식으로 진단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곳에서 진단은 애도와 구분되지 않는다.

  

Seungmann Park
Dec 6 — 23, 2023

Curated by Sein Kim
Graphic Design by Yesul Kim
Supported by Arts Council Korea, ARKO Creative Academy

쌀먹충 게이머-사진가의 태도에 관하여
김세인

우리는 이제 이미지에 얽힌 진실을 그 생산자나 재현 대상보다는 데이터를 통해 좇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 그런데 이미지가 언제나 데이터와 연결되어 있을수록, 어떤 이미지 산출물이 실재적인 무언가를 지시한다는 믿음은 더 강하게 요청되는 셈이다. 그 믿음은 특히나 가상에의 몰입을 위한 필수적 소양이며, 당연하지만 그것은 게이머의 멘탈리티에 가장 전형적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게임을 '인게임 노동'이라는, 그 바깥의 현실과 분간하기 어려운 지평으로 치닫게 하는 것은 게임 속 아이템이 주는 힘일 때가 많다. 일종의 재화로서의 아이템이란 그것을 획득한 누군가에게는 황홀할 정도로 게임 속 세계와의 구체적 장력을 실감케 하며, 현실보다 훨씬 확연하면서도 컴팩트한 이해득실을 의미하는 데이터인 것이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물신적 대상으로 구획하고 표상하는 것은 바로 개개의 아이템에 할당되는 이미지 파일이다.

박승만은 스스로가 〈메이플 스토리〉와 〈디아블로 II〉를 거친 온라인 RPG 게이머이자, 거기서 이른바 ‘쌀먹충*’이라는 경멸의 대상이기도 했다. 전시 제목이 된 ‘엔젤릭 버스터’는 메이플 스토리에서 P2E(Play to Earn)에 최적화된 직업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으로, 그렇듯 이번 전시는 인게임 노동 경험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박승만은 그것에 대한 섣부른 가치 판단이나 비판적 접근은 유보한 채 어디까지나 게이머-사진가 당사자의 입장에서 아이템의 존재 방식과 그 매혹을 둘러싼 게임적 현실을 사진전의 포맷에 솔직하게 재배치해본다. 복사가 금지된 아이템과 에디션 제한이 걸린 사진 작품이 닮았다는 것은 기본이다.

우선 〈사냥, 채굴, 노동의 이펙트〉는 메이플 스토리에서의 노동의 근거인, 스킬의 히트 이펙트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화면에 다중 노출시킨 사진이다. 전시에서 유일하게 아날로그 촬영에 의지해 제작된 작품이면서도, 여기서 필름은 이미지를 현상해내기 위한 중성적 장이 아니라 그 입자를 스프라이트에 노출된 픽셀과 함께 시각적 요소로서 등치시키기 위한 재료가 된다. 히트 이펙트의 광휘와 동기화된 카메라 조작으로써, 박승만은 사진을 통한 자신의 이미지 제작 프로세스 자체를 게임에서의 반복 플레이를 통한 재화 창출의 유비 또는 의사적 등가물로서 가시화한다.

그 반복 플레이는 엔젤릭 버스터를 코스프레한 실제 인물을 거리에 따라 단계적으로 촬영해 동일 사이즈로 출력한 연작, 그리고 2000년대 디아블로 II의 소박한 포토리얼리즘이 동원했던 프리렌더드(pre-rendered) 2D 이미지의 부자연스런 매끈함을 재현한 '팔라딘의 인벤토리' 연작에서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박승만의 작업에서는 디테일 레벨의 축소와 증대의 축을 계층적 세로축이 아니라 상대화된 가로축으로 전제하는 태도가 두드러지며, 우리가 편의상 ‘실제’와 ‘가상’이라 부르는 양 끝과 그 사이 점들이 이루는 각각의 거리가 일종의 식별번호와 같은 무엇이 될 뿐인 세계관을 제안하는 것이다. '팔라딘의 인벤토리' 연작이 게임의 이미지 파일을 코스프레하는 사진에 다름 아닐지라도, 그 인형 놀이를 수행하는 누군가의 충일감을 누가 무엇으로 박탈할 것인가. 박승만은 이 모든 것이 그저 갖고 싶었을 뿐이다.

* ‘아이템 팔아서 쌀 사먹는다’는 뜻의, 생계형 게이머를 비하하기 위한 속어.